남아메리카 중부에 있는 내륙국으로, 1525년 에스파냐의 A.가르시아가 처음 들어온 후 에스파냐의 식민지화 작업이 본격화되었다. 원주민 과라니족(族)에 대한 혹정, 예수회의 착취로 1719∼1735년 ‘코무네로스의 혁명’이 일어났고 1811년 5월에 독립을 획득하였다.

정식명칭은 파라과이공화국(Republica del Paraguay)이다. 동쪽으로 브라질, 남쪽과 남서쪽으로 아르헨티나, 북쪽과 북서쪽으로는 볼리비아와 국경을 접한다. 남아메리카의 중앙에 위치한 내륙국으로, 아르헨티나로 흐르는 파라나강(江)을 통해서만 바다로 나갈 수 있다. 1864∼1869년 3국동맹 전쟁, 1932∼1935년 볼리비아와의 그란차코(Gran Chaco) 전쟁 등 인접국과의 전쟁으로 극심한 인적·물적 손실을 입었다. 국명은 과라니족 말로 ‘위대한 강으로부터’라는 뜻의 “Pararaguay”에서 유래했으며, 여기서 위대한 강이란 이과수폭포와 연결되어 있는 파라나강을 가리킨다. 인구의 약 85%가 메스티소이며, 전 인구의 97%가 가톨릭 신자이다. 행정구역은 17개주(departamento)와 1개 수도(capital city)로 되어 있다.

[reveal title=" 1. 자연" open="false" color="red"]

파라과이는 사방이 볼리비아·브라질·아르헨티나에 둘러싸여 있인 내륙국으로, 아르헨티나를 흐르는 파라나강(江)이 바다로 나가는 유일한 출구이다. 국토 총면적은 406,752 ㎢로 한반도의 약 1.8배, 남한의 약 4배에 해당하는 크기이다. 이 국토의 중앙을 남회귀선(南回歸線)이 횡단하여 전국토가 아열대 또는 온대에 속한다. 10월부터 3월까지의 하계 평균 기온은 32℃이고, 4월부터 9월까지 동계 평균기온은 15℃정도로, 연평균기온은 24.5℃이다. 연 평균강우량은 1,500mm이며, 브라질과의 국경지대는 1,700mm에 달한다.전 국토 중 초원이 55%, 산림지대가 32%를 차지한다. 파라과이강이 북쪽에서 남쪽까지 약 800 km에 걸쳐 국토를 종단하여 파라나강으로 흘러드는데, 이 파라과이 강을 경계로 원래부터 파라과이 영토였던 남동부 지방과 차코라고 부르는 북서부 지방으로 나누어진다. 이 두 지방은 전혀 다른 경관을 보인다.국토의 40%를 차지하는 남동부 지방은 브라질 고원의 가장자리에 해당하는 해발고도 300∼600m의 완만한 대지(최고봉은 빌라리카:680m)와 파라과이강 연안의 파라과이 평원으로 이루어진 지역으로, 이곳에는 800개 이상의 하천, 많은 호소(湖沼), 저습지가 있으며, 우기(雨期)에는 하천이 범람하여 대해(大海)와 같은 경관을 보인다. 또한 열대삼림이 울창하고 토양이 비옥한데다 강수량이 풍부하고(연 1,700mm), 농목축업이 발달하여 전체 인구의 96%가 이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그 반면, 북서부는 완전한 평원이지만 비가 불규칙하게 내릴 뿐만 아니라, 건조한 초원과 밀림으로 덮여 있고 투수성(透水性)이 강한 사력층(砂礫層)으로 이루어진 불모지대이다. 미국계 석유회사들이 이 지역의 석유채굴권을 획득하였으며 미국의 군용비행장 등 군사시설이 있다.

[/reveal][reveal title=" 2. 주민" open="false" color="red"]

파라과이의 인구는 2006년을 기준으로 약 651만 명으로 중남미 전체 국가 중 15위 권에 해당된다. 인구밀도는 1㎢ 당 16.0명으로 남미 전체에서 인구밀도를 약간 밑도는 수준이다. 대부분의 인구는 수도인 아순시온(Asuncion; 186만 명)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전 인구의 약 57.9%만이 도시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데, 가이아나에콰도르볼리비아와 함께 남미 지역 전체에서 도시화율이 가장 낮은 국가군에 속한다.인구 추계에 따르면 파라과이 전체 인구는 2025년경 860만 명에, 2050년 경에는 1,03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2006년을 기준으로 연평균 인구증가율은 2.5%로 남미 전체 국가 중에서 인구가 가장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나라 중의 하나이다. 평균수명은 75.1세(남자 72.6세, 여자 77.8세)로 중남미 전체에서 평균과 유사한 수준이다. 0~14세 유소년층 인구 비중이 38%에 달해 전형적인 피라미드형 인구구조를 보인다. 조출생률과 조사망률은 각각 인구 1,000명당 29.1명과 4.5명이며, 합계출산율은 3.9명으로 중남미 전체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보이는 국가군에 포함된다.파라과이의 주민은 인디오의 과라니족(Guarani)과 백인의 혼혈인 메스티소가 압도적인 비중(95%)을 차지하고 있으며, 순수한 과라니족은 1.5%, 백인은 2% 정도이다. 일부 원주민들은 아직도 차코 지방에서 활과 화살을 사용하는 원시생활을 하고 있다. 공용어는 에스파냐어(語)와 토착 과라니어이며 수도 아순시온 이외의 농촌에서는 과라니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주민의 대부분(90%)가 로마가톨릭을 신봉한다.2004년 기준으로 UNDP의 인간개발지수(HDI)는 0.757로 조사대상국 177개국 중 91위를 차지하였으며, 중남미 국가 중에서는 브라질,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페루, 에콰도르, 수리남과 함께 중진국 순위를 나타내었다.

[/reveal][reveal title="3. 역사" open="false" color="red"]

1525년 에스파냐의 A.가르시아가 과라니족의 거주지이었던 파라과이에 맨 처음 발을 들여놓은 이후 1536∼1556년 사이에 에스파냐의 식민지화 작업이 본격화되었다. 원주민 과라니족은 마테차(茶) 재배를 비롯한 농장이나 목장에서 혹사당하였다. 예수회는 이곳에 대신정국가(大神政國家)를 건설하고 20여 만의 과라니족을 1776년까지 착취하였다. 이와 같은 예수회의 특권은 식민지 출생 에스파냐인들의 불만을 불러일으켜 1719∼1735년에는 ‘코무네로스의 혁명’으로 이어졌고 1811년 5월 P.J.카바예로와 F.예그로스가 이끄는 민병대가 에스파냐 총독을 축출함으로써 독립을 획득하였다.독립 후 1813∼1840년에는 프란시아를 중심으로 강력한 독재체제를 유지하면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부터의 경제적 의존에서 탈피하기 위하여 통상수교거부정책을 실시하는 한편, 경제 재편성을 꾀하였다. 이에 따라 농지개혁을 단행, 농민에게 토지를 분배하고 공립학교를 창설하여 문맹퇴치에 노력하였다.1841∼1862년 C.A.로페스의 독재정치 기간 동안 개방정책을 취하여 외국자본에 의한 국력의 증강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1862년 대통령이 된 F.S.로페스는 영토확장의 야망으로 무모한 전쟁을 일으켰다. 1864∼1869년의 6년 간에 걸친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와의 3국동맹 전쟁에서는 전 인구의 1/2, 남성인구의 9/10를 상실하였으며, 전쟁이 끝난 뒤 살아남은 남자는 2만 8000명에 불과하였다. 이 결과 파라과이 인구는 1864년의 130만에서 1870년에는 22만으로 줄어들었다.그후 영국자본의 진출이 현저해지고 국내에서는 친(親)아르헨티나파(派)와 친브라질파 사이에 정쟁(政爭)이 되풀이되었다. 3국동맹 전쟁 후 파라과이는 차코 지방의 개척에 착수하였으나 이것은 볼리비아의 남진정책과의 충돌을 빚게 되었다. 1932∼1935년의 그란차코전쟁에서는 영국 석유자본의 원조를 얻어, 미국자본이 지지하는 볼리비아와 전쟁을 벌였다. 이 전쟁에서 파라과이는 5만 명 이상이 희생되었고 차코 지방의 3/4을 획득하였다.그후 여러 차례 쿠데타와 역(逆)쿠데타가 잇따라 발생, 정치적 혼란이 계속되었다. 1954년에는 장군 A.스트로에스네르가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고 대통령에 취임한 뒤 7차례의 선거에서 계속 당선되어 8차례나 대통령직에 올라 장기집권했다. 그러나 1989년 2월 자신의 측근이자 제1군사령관인 장군 A.로드리게스가 민주화를 내걸고 쿠데타를 일으켜 스트로에스네르는 실각하였고 브라질로 망명하였다. 로드리게스는 1989년 5월 총선을 실시하여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약속대로 1993년 8월 문민정부에 정권을 이양하였다. 이후 문민정부는 군부의 영향력을 배제하기 위해 노력하였다.1998년 5월 실시된 선거에서 라울 쿠바스 그라우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전 육군사령관 오비에도(Oviedo) 석방문제로 여야의 대치정국이 지속되었다. 부통령 아르가냐 암살사건으로 민중봉기가 일어나자 라울 쿠바스 그라우대통령은 취임 7개월만인 1999년 3월 사임하였으며, 헌법규정에 따라 루이스 곤살레스 막치 상원의장이 쿠바스 전대통령의 잔여임기인 2003년 8월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하였다. 곤살레스 막치 대통령의 군부 개혁으로 군부영향력이 현저히 축소되었다. 2000년 5월 반정부 쿠데타가 발생하였으나 진압되었다. 2003년 4월 대선에서 당선되어 8월 15일 취임한 니카노르 두아르테 대통령은 1993년 민정이양 이후 처음으로 정통성에 하자없이 정권을 이양받았다.

[/reveal][reveal title="4. 정치" open="false" color="red"]

1811년에 최초 헌법이 제정되었으며 이후 1992년 6월 20일에 현행 신헌법이 발효되었다. 정치체제는 대통령중심제로, 대통령은 국민의 직접선거에 의해 선출되며 5년 임기로 단임제이다. 의회는 양원제로, 상원 45석, 하원 80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의회 선거는 대통령 선거와 동시에 실시되며, 상원은 전국구 비례대표제, 하원은 지방별 비례대표제로 선출되고, 임기는 5년이다. 주요 정당으로 현 여당인 홍당(PC: Partido Colorado)과 야당인 급진정통자유당(PLRA: Partido Liberal Radical Autentico) 등이 있다. 현 대통령은 2003년 8월15에 취임한 두아르테 (Nicanor Duarte) 대통령으로, 총체적 국가개혁을 천명하고, 최우선 국정과제로 부정부패 척결, 경제활성화, 빈곤퇴치를 선정하였다. 현재 파라과이는 무토지농민에 대한 토지분배문제와 빈곤심화에 따른 치안불안이 핵심이슈이다.대외적으로, 파라과이는 반공·자유주의 국가와의 제휴 강화를 기본방침으로 하며, 중남미 여러 나라, 특히 남미공동시장(MERCOSUR) 국가와의 관계 강화를 중심으로 한다. 정치적인 친서방 반공국가였으나, 1989년 로드리게스(Rodriguez) 대통령 집권 이후 구소련연방 해체 등의 여파로 동구권과도 외교관계 수립하였다. 미주기구(OAS), 리오그룹 등 역내 기구와의 협력증진을 중시하고 있으며, 1991년 3월 남미공동시장(MERCOSUR)의 출범에 따라 아르헨티나, 브라질, 우루과이 등 역내 회원국과 제반 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볼리비아, 칠레 등 인접국과 선린관계를 추구하고 있다.파라과이의 총 병력은 2007년 1월 현재 1만 6,500명(육군 12,500명, 해군 3,000명, 공군 1,000명)이다. 국방비는2004년 기준 5,100만 달러이다. 군대는 18세 이상을 대상으로 한 징병제로, 복무기간은 최고 1년이다.

[/reveal][reveal title="5. 경제" open="false" color="red"]

1977∼1981년에 파라과이는 주요 수출품인 면화와 콩의 국제시세가 높아진 틈을 타 수출에 전력을 다 하면서 중남미 최고의 성장률(평균 11.2%)을 보였으며, 1980년도의 실업률은 거의 0%에 가까웠다. 그러나 1981년의 국내총생산 성장률은 8%에 그치고 12%의 인플레이션을 나타냈다. 이후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 국내 금융파동과 농산물 국제시세하락으로 인해 경제가 침체조짐을 보였으나, 2004년 이후 다시 전반적인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정부의 효율적 통화정책을 통한 금융시장 안정,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주변국가의 경제회복, 달러화 및 유로화 대비 과라니화 평가절하, 국제금리인하, 농산물풍작 등에 따른 것이다.파라과이의 경제는 방대하고 비옥한 토지를 기반으로 농업, 목축업 등 1차산업이 중심이다. 노동인구 가운데 약 45%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농목업은 국내총생산의 22.4%(2006), 수출의 80%를 차지한다. 주요 생산품은 콩, 목화(수출총액의 40%), 목재, 커피, 잎담배 등이다. 임업도 발달하여 목재는 수출총액의 6.3%를 차지하고 있다. 철광석, 망간, 구리가 매장되어 있으나 수송상의 문제 등으로 개발이 되지 않고 있다. 풍부한 수자원과 전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삼림자원 및 조림개발 잠재력도 풍부하다. 이타이푸 수력발전소 건설에 힘입어 건설업 및 제조업이 크게 성장하였다. 이타이푸 발전소는 발전능력 1260만kW로 세계 최대이며 브라질과의 합작으로 1982년 10월에 완성하였다. 석유 등 에너지 자원을 전량 수입하고 있는 파라과이는 자국 내 농산물 자원을 이용하여 에탄올 등 바이오에너지 대량생산을 통해 농업 및 에너지 산업 발전을 도모하는 한편, 대체에너지 수출국가로서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제조업은 주로 식품가공업과 가죽제품과 관련되며, 최근 의류제조업도 남미공동시장(MERCOSUR) 국가에 대한 수출증가로 활기를 띠고 있다. 파라과이는 일찍부터 대외통상이 개방된 나라로 관세 및 수량제한 등 비관세 장벽이 없다는 점이 특징적이다.주요 수출품은 콩류(콩, 콩가루, 콩기름 등), 육류, 면화, 목재, 가죽, 담배, 설탕, 동물, 곡류, 식물성 기름으로 수출품의 대부분이 농산품 및 농산물 가공제품이다. 주요 수출국은 칠레, 브라질,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미국, 타이완 등이고, 주요 수입국은 아르헨티나브라질, 타이완, 미국, 일본 등이다. 브라질아르헨티나 국경에서는 서류 없이 약 31억 달러에 달하는 대규모 국경무역이 행해지기도 한다.
1995년 1월 창설한 남미공동시장(MERCOSUR) 가맹국이다.

[/reveal][reveal title="6. 사회" open="false" color="red"]

파라과이의 학제는 초등학교 6년, 중등교육 6년, 대학교 4∼6년이다.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이자 무상교육이다. 여러 가지 교육 외적인 문제로 인하여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교육수준이 전반적으로 낮다. 1992년 개정된 헌법에 의해 과라니어와 에스파냐어가 공식국어로 지정됨에 따라 파라과이의 모든 교육기관에서 과라니어를 의무과목으로 채택하여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2004년 기준으로 15세 이상 인구의 문맹률은 약 7%이다.국민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사회보장제도는 없으나 일반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국립 사회보험공사(IPS)가 있다. 보험료는 매월 급료의 9%를 노동자가 부담하고, 14.5%를 고용자가 부담한다. 고용인을 둔 회사는 고용인에 대한 IPS 가입이 의무사항이다. 국민들은 IPS 18%, 민간보험회사 7%, 군·경찰 의료기관 3%로 가입되어 있다.방송국은 TV 방송국 4개로 국영 방송국 1개(SNT)와 민영 방송국 3개가 있으며, 라디오 방송국은 42개(아순시온에 5개)가 있다. 파라과이 정부는 정부홍보를 위해 TV 방송국 1개 채널을 인수하는 방안을 추진 중에 있다.민간정권출범 이후 민주화, 언론자유 신장과 더불어 사회적으로는 파업, 무토지농민들의 사유지 불법점유, 농촌인구의 대도시 이주에 따른 도시빈민화 등으로 인한 범죄율 상승 등의 사회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파라과이의 국가경쟁력을 저해하는 주요 사회적 요인으로 부정부패(부패지수 세계 3위), 경찰력 미비로 인한 치안불안 심화, 토지분배를 둘러싼 사회 각 계층간 알력 등을 꼽을 수 있다.

[/reveal][reveal title="7. 문화" open="false" color="red"]

파라과이는 원주민인 과라니족(Guarani) 문화와 스페인 문화가 접목된 독특한 혼합문화를 형성하고 있으며, 이러한  이중적 요소가 민요· 미술· 문학에 반영되어 있다. 과라니 악사(樂士)들은 에스파냐풍의 하프와 기타를 연주하고 라틴아메리카 스타일의 유럽 댄스를 즐긴다. 또한 가톨릭 성당이나 교회 장식에는 과라니 스타일의 조각이나 목각이 이용된다. 이밖에 파라과이의 가장 대표적인 공예품으로 거미줄 모양의 레이스인 냔두티(Nanduti)에서도 두 요소를 함께 볼 수 있다.파라과이는 전 국민의 97% 상당이 가톨릭을 신봉하고 있어, 가톨릭 교단이 정치, 사회 등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각 지방을 나누는 교구별로 수호신(성자)이 있어 이와 관련된 종교적 행사가 많으며, 대표적으로 매년 12월 8일 성모잉태일(Caacupe 성녀를 기림)에는 전국적인 규모의 행사가 행해진다. 파라과이의 공휴일은 국가의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날과 더불어 가톨릭과 관련되는 휴일이 대부분이다. 특히 부활절 주간 (4월 12일~13일에 해당하나 매년 일자 변경됨)은 파라과이인들이 가장 기대하는 휴일로서 보통 3~4일간의 연휴를 즐기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휴가지 및 고향으로 향한다.파라과이 출신의 유명한 예술가로는 시인 아우구스토 로아 바스토스와 기타 작곡가 아구스틴 바리오스를 꼽을 수 있다.

[/reveal][reveal title="8. 대한관계" open="false" color="red"]

파라과이는 1962년에 한국과 수교하였으며 북한과는 수교하지 않았다. 한국과 문화협정(1973), 과학·기술협력협정(1975), 무역협정(1981), 사증면제협정(1982), 투자보장협정(1992), 범죄인 인도협정(1996) 등을 체결하였다. 전통적으로 한국에 대해 우호정책을 취하고 각급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입장을 적극 지지해왔으며, 자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한국의 경제발전 모델을 도입하려 하고 있다. 특히, 한국 기업의 투자진출 및 경제, 기술, 교육 등의 분야에서 한국과의 실질적인 협력관계 증진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2005년 현재 대(對)한국 수입은  5,127만 6,000달러이고, 수출은 416만 달러이다. 주요 수입품은  자동차, 자동차부품, 섬유류, 전자전기제품, 합성수지, 낚시용품, 생활용품, 안경테 등이고, 주요 수출품은  목재, 목재 가공상품, 원피 등이다.1965년 파라과이로 농업이민을 시작한 이래 2005년 현재 한국 교민은 6,000여 명이고 체류자는 97명에 달한다. 현재 대부분이 수도인 아순시온과 주요 국경도시인 시우다드 델 에스테, 엔카르나시온, 페드로 후안 카바예로 등지에서 상업활동에 종사하고 있다. 또한 한국 교민은 농목축 분야 중 양계업 종사자가 많은데, 파라과이 시장의 50%를 점유하는 계란을 생산하고 있다. 한편 파라과이는 한국인들의 미주지역 이민진출의 교두보 역할을 하기도 한다. 약 15만명이 파라과이를 거쳐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인근 국가들이나 미국, 캐나다로 이민을 하는 경향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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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남아메리카 중부
면적(㎢), 406752
해안선(km), 0
시간대, UTC-4 Summer: UTC-3
수도, 아순시온
종족구성, 메스티소(95%) 기타(5%)
공용어, 스페인어 과라니어
종교, 로마가톨릭교(89.6%) 개신교(6.2%) 기타(4.2%)
건국일, 1811년 5월 14일
국가원수/국무총리, 오라시오 카르테스(Horacio Cartes)대통령(2013.8.15 취임)
국제전화, +595
정체, 공화제
통화, 과라니(Guarani, G)
인구(명), 6541591 (2012년 )
평균수명(세), 75.56 (2008년 )
1인당 명목 GDP($), 3916 (2012년 )
수출규모(억$), 102.7 (2011년 )
수입규모(억$), 120.6 (2011년 )
인구밀도(명/㎢), 16 (2010년 )
GDP(PPP)($),6108 (201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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