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브해 이스파니올라섬의 동반부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이다. 1492년 콜럼버스에 의해 발견되어 에스파냐의 지배를 받다가 1795년 프랑스에 이양된 이후 프랑스령인 아이티에게 수차례 점령을 당하였고 1844년 완전한 독립을 이뤘다.

정식명칭은 도미니카 공화국(Dominican Republic)이다. 이스파니올라섬은 카리브해와 대서양 사이에 있는 섬으로 서인도제도에서 쿠바섬 다음으로 크다. 섬의 서쪽 1/3은 아이티 공화국(Haiti)이고 동쪽의 2/3가 도미니카 공화국(Dominican Republic)이다. 1844년 2월 27일 아이티로부터 독립하였다. 메스티소 및 뮬라토가 73%를 차지하여 혼혈이 인구 대다수를 차지한다. 스페인어를 사용하며 카톨릭 인구가 대다수이다. 경제, 외교면에서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으며 중남미와 카리브 연안국들의 경제 통합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교량역할을 하고 있다. 행정구역은 31개 주(provincia)와 1개 행정구(distrito)로 이루어져 있다.

[reveal title=" 1. 자연" open="false" color="red"]

도미니카는 아이티와의 국경 북쪽에서부터 남안 중앙부에 걸쳐서 중앙산맥(최고봉은 3,175m의 두아르테산)이 뻗어 있어 국토를 북동부와 남서부로, 2대 1의 비율로 이분하고 있다. 중앙산맥의 북쪽 북부산맥과의 사이에 전개된 베이가레이알계곡(시바오 지방)은 옥토를 이루고 있어, 주요도시도 이곳에 집중되어 있다. 길이 400km의 북(北)야퀘강은 북서쪽으로 흘러 대서양으로 유입되고, 오사마강(江)은 남쪽으로 흘러 산토도밍고에서 카리브해(海)로 유입된다. 남서부에는 남(南)야퀘강과 해면보다 낮은 엔리키요호(湖)가 있으나, 해안을 따라 뻗은 남부산맥으로 남쪽이 막혀서 산지성(山地性)을 이루고 있다.

기후는 열대권에 속하여, 저지에서는 연중 30℃ 내외의 기온을 이루나 카리브해로 불어오는 북동무역풍의 영향으로 견디기가 쉽고 고지에서는 연평균 10℃ 내외를 이루고 있다. 연강우량은 북부가 2,000mm 이하, 남부가 1,500mm 이하이다. 영구경지 10.26%, 경작 가능한 땅 22.49%, 기타 67.25%로 이루어져 있다(2005년). 가끔 열대성 폭풍과 허리케인이 발생하여 큰 재해를 일으키곤 한다.

[/reveal][reveal title=" 2. 주민" open="false" color="red"]

인종구성은 유럽계와 아프리카계의 혼혈인 물라토가 73%로 주민 대부분을 차지하며 그외에 백인이 16%, 흑인이 11%이다. 16세기 초부터 사탕수수 농장 경작을 위해 아프리카에서 이주한 흑인과 이후 아이티 흑인유입으로 중남미국가 중에서 비교적 흑인이 많은 편이다. 소수의 백인과 대다수의 물라토 및 흑인 간의 이질적 요소가 내재되어 있어 사회발전을 저해하는 잠재요인으로 지적되고 있으나, 다수의 흑인과 혼혈인이 정치·경제 요직에 진출, 인종차별이 비교적 적다고 할 수 있다.

수도인 산토도밍고(Santo Domingo)에 220만명이 거주하며 그 외에도 주요도시인 산티아고(Santiago)에 75만명, 라로마나(La Romana)에 17만명, 푸에르토 플라타(Puerto Plata)에 27만명이 밀집해있다(2007년).

연령별 인구구조를 보면 인구의 32.1%가 15세 이하로 유소년층(幼少年層)이 많다. 중위연령도 24.5세(남성 24.3세, 여성 24.6세)로 매우 젊다. 2003년 기준 HIV/AIDS 성인보유율이 1.7%에 달하며 HIV/AIDS 감염자수가 8만 8000명이고, HIV/AIDS에 의한 사망자수가 7900명에 이른다.

종교는 가톨릭이 95%, 개신교 3% 그리고 나머지 2%는 여러 종교를 믿고 있다. 공용어는 에스파냐어(語)이다. 미국과 인접하고 관광산업이 발달함에 따라 여타 중남미국가들에 비해 폭넓은 층에서 영어가 사용되기는 하나, 일반화되지는 못했다.

[/reveal][reveal title="3. 역사" open="false" color="red"]

도미니카는 1492년에 콜럼버스에 의해 발견되어 에스파냐의 식민지가 되었다. 16세기 중에 원주민은 전멸하였고 아프리카 흑인노예가 대량으로 수입되어 사탕수수 재배에 혹사되었다. 1795년 바젤협약에 의하여 프랑스에 이양된 이래 아이티군(軍)에 의한 점령·독립, 에스파냐통치·재독립, 아이티에 의한 재점령 등으로 고난의 역사를 거쳤으나 1844년 드와르테의 지도하에 공화국의 성립을 선언하고 현재의 국가기초를 다졌다. 그러나 그후에도 군벌과 결탁한 토지귀족의 배신행위 때문에 1862~1865년의 에스파냐 지배를 비롯하여 반란·독재의 반복으로 정치정세는 문란해지고 결국 19세기 말 이후에는 미국의 지배하에 놓였다. 미국은 1917∼1924년 ‘권익의 보호와 질서유지를 위하여’ 해군을 파견하여 1941년까지 세관을 관리하였다.

미국의 동의를 얻어 1930년에 정권을 장악한 라파엘 트루히요는 족벌정치로 민심을 상실하여 1961년에 암살되고, 1963년의 총선거로 발족했던 도미니카 혁명당의 보슈 정권도 7개월간의 집권으로 종말을 고했다. 1965년 4월 대령 카마뇨 등 청년장교들이 보슈의 복귀를 요구하는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미국의 지지를 얻지 못하여 실패로 끝나고, 1966년 6월의 선거에서 호아킨 발라게르가 보슈를 누르고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3기에 걸친 대통령 임기 중 정계부패와 인플레의 증대로 1978년 5월의 대통령선거에서 처음으로 야당인 도미니카혁명당(PRD)의 안토니오 구스만 페르난데스에게 패하였고, 8월에는 구스만이 대통령으로 취임하여 처음으로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이룩하였다.

1982년의 대통령·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도미니카 혁명당(PRD)의 살바도르 호르헤 블랑코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1986년의 선거에서는 1966~1978년간 3차례 연속집권했던 기독사회개혁당(PRSC)의 호아킨 발라게르가 재선되었다. 1994년 대선에서도 발라게르가 재당선되었으나, 부정선거 시비로 심각한 정치·사회적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제정당, 사회단체간 민주주의를 위한 협약(Pacto por la Democracia)에 따라 발라게르 대통령 임기 2년 단축 및 연임 배제 헌법을 제정하게 되었다. 이후 도미니카해방당(PLD)와 도미니카 혁명당(PRD) 2개 당이 번갈아 정권을 장악하는 양당정치의 형태를 띠어왔다. 1996년 선거에서 도미니카 해방당(PLD) 후보인 페르난데스가 승리함으로써 다당정치가 시작되었다. 2000년에는 도미니카 혁명당(PRD)의 도밍게즈가 승리하였다.

2004년에는 도미니카 해방당의 페르난데즈 대통령이 재당선되어 8월 16일 취임하였으며, 집권여당인 도미니카해방당은 5월 총선에서도 과반의석을 확보하였다. 법·치안질서 확립, 2005년도 IMF 차관 도입 협정체결 이후 긴축재정과 공공부문 구조조정 등을 통한 국정개혁 추진중인데, 2004년2월 달러당 50페소에 달하던 환율이 2006년 12월말 현재 32~33페소로 안정되고, 마약·부패·폭력사범 근절에 대한 강력한 의지 과시로 집권 초기 2년간 가시적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고유가에 따른 경제난, 높은 실업률, 만성적인 전력난과 빈부격차 심화 등의 어려움이 가중되는 가운데 헌법개혁, 재정개혁을 둘러싼 찬·반 등 국민여론 양극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reveal][reveal title="4. 정치" open="false" color="red"]

도미니카는 1966년 11월에 개정된 헌법에 따라 국가원수는 국민투표에 의하여 선출되는 대통령으로 임기는 4년이다. 국회는 양원제로 정원은 상원 32명 하원 150명으로 구성된다. 상원은 26주와 수도권에서 한 사람씩 선출되는 의원을 합쳐 40명으로 구성되며 임기는 4년이다. 하원은 인구 5만 명에 한 사람의 비율로 뽑히는 의원 149명으로 구성되며 임기는 역시 4년이다. 현대통령은 중도·비동맹 성향의 페르난데스(Fernandez)로 2004년 8월 16일에 취임하였다. 주요정당은 도미니카해방당(PLD, 상원 22석/하원 96석), 도미니카 혁명당(PRD, 상원6석/하원60석) 등이 있다.외교적으로는 대미(對美) 협력과 미주기구(OAS, Organization of American States)를 존중하고 있고, NAFTA(North American Free Trade Agreement:북미자유무역협정) 및 기타 지역의 경제 통합 움직임과 관련 중남미와 카리브해(海) 연안 국가들의 지역통합을 위한 교량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공산권과는 국교(國交)가 없다.

군사력은 총 2만 4500명으로 육군(1만 5000명)·공군(4,000명)·해군(5,500명)으로 구성된다. 군복무는 18세 이상을 대상으로 한 지원병제이다. GDP 대비 군사비는 2006년 현재 0.8%이다.

[/reveal][reveal title="5. 경제" open="false" color="red"]

도미니카 공화국은 지금까지 외국자본, 특히 미국자본과 대지주세력의 지배하에서 농업을 주요산업으로 하며, 사탕수수, 커피, 담배를 비롯한 소수의 산물에 의존하는 모노컬처(단일재배)를 특징으로 해왔다. 노동인구의 절반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였으나 최근에는 11.5%로 그 비중이 낮아졌다(2007년 현재). 대토지소유제에서 사탕수수·담배·카카오·커피·바나나 등 수출작물을 주로 재배하고 있다. 쌀·옥수수 등 국내소비용 작물도 재배하나 부족분의 식료를 대량 수입하고 있다. 현재는 관광과 자유무역지대의 성장으로 서비스 부문이 전체 노동인구의 절반 이상(58.2%)를 차지하여 농업 대신 최대 고용부문이 되었다(2007년 기준).

광업도 미국자본의 원조에 의해서 수출용으로 생산되는 보크사이트를 주로 산출하고 있으며, 그 밖에 금과 구리의 자원을 비롯하여 철·은·납·석유가 매장되어 있다.

제조업은 자유무역지대 업체가 주류를 이루고 있어 2000년 말 현재 46개 공단에 481개 업체가 입주하고 있으며, 약 19만 7000명의 현지인력이 고용되어 있다. 공업의 대부분은 제당업이 차지하고 있고 그밖에도 면직공업·시멘트 공업 등의 경공업이 있으나 미미하다. 제조업에서는 기업수로는 국유(옛 트루히요家 소유)가 60%, 외국자본소유가 28%, 민족자본소유가 12%이나 자본총액의 약 반은 미국민간 직접투자에 의하고 있다.

2007년 현재 GDP는 225억 4000억 달러이며, 1인당 GDP는 9200 달러이다. GDP 성장률은 7.2%에 달한다. 2007년 현재 외환보유고는 총 25억 2500만 달러이고, 총 외채는 88억 4200만 달러이다. 2007년 현재 실업률은 15.5%에 달하며 인플레이션율은 5.8%이다. 2004년 현재 총인구의 42.2%가 빈곤계층에 속한다. 경제가 성장하고 있으나 높은 실업율과 불완전고용, 극심한 임금 불평등은 심각한 문제이다.

수출은 원료수출·제품수입의 후진적 무역구조를 이룬다. 최대의 주된 무역상대국은 미국으로 수출의 72.7%, 수입의 46.9%를 차지한다. 무역수지의 적자, 더욱이 운임·차입금의 상환 등에 의한 적자와 경상수지(經常收支)의 적자 등은 차관(40%) 및 미국의 증여(60%)에 의하여 보충되고 있다.

2007년 기준으로 총 수출액은 68억 8100만 달러이며 총 수입액은128억 9000만 달러로, 수입이 수출을 큰 폭으로 초과하는 양상이다. 주요 수출품은 니켈(ferronickel), 원당, 담배, 커피, 금, 은, 코코아, 육류, 소비재 등이고, 주요 수입품은 식품류, 석유, 면화 및 섬유, 화학 및 제약품 등이다. 2006년 현재 도미니카공화국의 교역은 미국에 크게 의존하는 특징을 보이는데, 주요 수출국은 미국(72.7%), 영국(3.2%), 벨기에 (2.4%) 등이며, 주요 수입국은 미국(46.9%), 베네수엘라(8.4%), 콜롬비아(6.3%), 멕시코(5.7%) 등이다.

2007년 3월부터 중미-도미니카공화국간 자유무역협정(CAFTA-DR, the Central America-Dominican Republic Free Trade Agreement)이 실시될 예정으로, 투자 및 수출이 활성화되고 아시아 의류산업에 대한 적자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reveal][reveal title="6. 사회" open="false" color="red"]

1980년대 후반의 도미니카 사회는 도미니카의 스페인-카리브해의 혈통을 반영한다. 도미니카 사회는 인종과 계급으로 명백하게 나누어져 있으며 소수가 사회의 부를 장악하고 있는 반면 대다수 서민들은 생존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 중산층은 자신들의 정치적·경제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도미니카 사회는 상대적으로 신분 상승이 어려운 편으로, 많은 수의 사람들은 현재 자신의 지위를 확고히 하거나 강화할 수 있을 뿐이다. 또 소수의 백인과 대다수의 물라토, 흑인 간에 이질적 요소가 내재되어 있어 사회발전을 저해하는 잠재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도미니카의 교육제도는 초.중등학교 8년(Educación Básica), 고등학교 4년(Educación Media), 대학 4년으로 이루어져있다. 초·중등학교와 고등학교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나, 재원 부족으로 실질적 효과는 미미한 편이다. 초등학교 입학률은 91%에 달하나, 졸업률은 20%에 지나지 않는다. 국공립학교 숫자가 적은 편이며 대부분 사립학교에 다닌다. 일반적으로 교육수준이 낮아 문맹률은 15세 이상에서 13%에 달한다. 도미니카에서 교육은 복지와 더불어 가장 낙후한 분야로 교육여건개선을 주요 국가시책으로 추진하여 교육개발 10개년 계획을 실시중이다.보건·복지분야는 정부가 개선해야 할 시급한 부문의 하나로, 특히 농촌지역의 위생상태가 취약하다. 도미니카 총 인구의 30% 이상이 실질적인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농촌 및 빈민층 지역에는 전염병 발생빈도가 매우 높다. 사회보장제도의 하나로 국가의료보험이 있으나, 공공병원이 시설·약품 등 서비스면에서 매우 낙후된 편이다. 최근 정부는 의료 인력 증대를 통한 의료현대화를 위해 노력중이다.

또한 최근 치안상황이 악화되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들어 미국내 도미니카 불법체류자 및 범법자들이 본국으로 송환되고 또한 인근 아이티로부터의 부랑민이 대거유입되면서 소매치기를 비롯한 강도, 총기사고 등 강력사고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주요신문으로는 1889년 9월에 창간된 8만 8000부의 최대일간지인 《리스틴 디아리오 Listin Diario》가 있다. 진보적 성향으로 도미니카 뿐만 아니라 푸에르토리코와 마이애미뉴욕 등 미국 일부 지역에도 배포된다. 그 외에도 1981년에 창간된 도미니카 양대일간지 중의 하나이며 보수 성향의 《호이 HOY》, 《엘 시글로 EL SIGLO》, 《엘 내쇼날 NACIONAL》, 《울티마 호라 ULTIMA HORA 》등이 있다. 주간지로는 《럼보 RUMBO 》《아호라 AHORA》등이 있다. 라디오방송은 Mil, Universal, JIJB, Central, Popular, Comercial 등 전국에 250개국 이상의 방송국이 있다. TV방송국은 국영 TV와 미국 케이블 TV를 포함해 25개국이 있는데(2003년 현재), Radio Television Dominicana(채널 4), Antena Latina (채널 7), Color Vision(채널 9), Telesistema(채널 11) 등이 주요 방송국이다.

주요 교통수단은 자동차이며, 도로는 총연장 1만 2600km로 그 중 절반 정도인 6,224 km만이 포장도로로 도로사정이 열악하다(1996년). 전국에 걸쳐 고속도로가 건설되어 있으나, 대중교통시설은 상당히 취약한 편이다. 철도 총연장은 517km인데, 제당소 전용 철도로 1,226km가 더 있다(2006년). 공항은 2007년 현재 총 34개가 있다. 주요 도시간에는 항공노선으로 연결가능하며, 수도 산토도밍고를 비롯하여 푸에르토 플라타, 라로마나, 푼타카나, 바라호나 등의 도시에는 국제공항이 있다. 주요 항구로는 산토도밍고를 비롯하여 보카치나, 푸에르토플라타 등이 있다.

도미니카는 카리브지역 최고의 통신선진국으로 전화사정은 양호하다. 2006년 현재 유선전화 회선 수는 총 89만 7000개이며, 휴대전화는 460만 6000개에 달한다. 인터넷은 주로 모뎀(전화선)을 사용하며(40% 수준), 주요 인터넷 서비스업체로는 코드텔 플래시(CODETEL FLASH), 트리콤(TRICOM), 아스터 케이블(ASTER CABLE) 등이 있다. 인터넷 국가코는는 ‘.do’이며, 인터넷 호스트 수는 2007년 현재 8만 1218개이고, 인터넷 사용자수는 2006년 현재 123만 2000명이다.

[/reveal][reveal title="7. 문화" open="false" color="red"]

도미니카 거리회화

도미니카 공화국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최초로 식민활동을 시작한 곳으로, 당시의 유적이 잘 보존되어 있다. 국가명과 수도명을 포함하여 여러 지명과 문화재에 그 영향력이 새겨져있다. 수도이름인 산토도밍고(Santo Domingo)나 국가이름인 도미니카 공화국(Republica Dominicana)은 카톨릭의 권위있는 한 교파인 도미니코스파(산토도밍고회)에서 나온 단어들이다. 도미니카 공화국은 스페인어로 “Republica Dominicana”인데, “Dominicana”란 단어는 “도미니코스 교단(La Orden de Dominicos)의”를 뜻하는 형용사이다. 수도인 산토도밍고는 신대륙 최초의 도시이며 당시 신대륙 개척자들의 활동 본거지였다. 도미니카인들은 외국인들이 자국을 “도미니카”라고 부르는 것을 싫어하며, “도미니카나”라고 부르기를 원한다고 한다. 식민초기에 스페인에서 도미니코스교단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 그들 성인(Santo)의 이름인 산토도밍고(Santo Domingo)를 도시이름으로 정하였다. 도미니코스파(la Orden de Dominicos)는 산토도밍고회(會)로 불리기도 하였다. 유네스코는 1990년1월 2일에 산토도밍고 내 콜럼버스의 유적지(Zona Colonial)를 인류문화재로 지정하였다.

도미니카의 인디오 영웅을 묘사한 《엔리키요》의 자 가르방, 문예평론가 페드로 엔리케스 등 저명한 문학가가 있다. 도미니카 공화국은 독특한 문화적 전통을 지니고 있으며 메렝게라고 하는 색다른 무곡(舞曲)도 있으나 , 점점더 미국식 생활양식이 일반생활에 침투되어 가고 있다.

[/reveal][reveal title="8. 대한관계" open="false" color="red"]

도미니카 공화국은 1948년 12월 한국을 승인하였으며, 6·25전쟁 때는 UN(United Nations:국제연합) 한국재건위원단을 통하여 1만 달러의 원조를 제공하였다. 1962년 6월 6일 한국과 수교하였으며, 1980년 도미니카에 상주공관을 설치하였고 1983년 도미니카도 상주공관을 설치하였다. 오랜기간 한국과 단독수교국이었으나, 2007년 9월 27일 북한과도 수교를 하여, 현재 도미니카 공화국은 남북한 동시수교국이 되었다.도미니카 공화국은 한국과 문화협정(1968년), 사증면제협정(1982년), 과학기술협력협정 (1982년), 체육협정(1983년), 투자보장협정(2006년), 대외경제협력기금 차관협정(2006년), 관세정보화사업 EDCF 협정(2006년), 학술교류협정(2006년) 등을 체결하였다. 1995년 외무차관 다르감, 1999년 노동차관 곤잘레스 니나가 방한하였으며, 2006년에는 페르난데즈 대통령이 방한하기도 하였다.

2005년 현재 대한(對韓) 수출은 6900만 달러, 수입은 1억 2000만 달러이다. 주요 수출품은 광물(페로니켈), 섬유, 화학제품 등이며, 수입품은 자동차, 전자제품, 기계 등이다. 2006년 현재 총 20개 업체가 진출해있는 상황이다.

2007년 현재 교민수는 총 450 여명 정도로 영주권자 150명과 체류자 300명이 있다. 체류자의 대부분은 자유무역지대 근로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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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이름,Dominican Republic
위치,아메리카 카리브해
면적(㎢), 48730
해안선(km), 1288
시간대, UTC -4
수도, 산토도밍고
종족구성, 혼혈(73%) 백인(16%) 흑인(11%)
공용어, 스페인어
종교, 로마가톨릭교(95%) 기타(5%)
건국일, 1884년 2월 27일
국가원수/국무총리, 페르난데스(Fernandez)대통령
국제전화, +1809
정체, 공화제
통화, 도미니카 페소(RD$)
인구(명), 10088598 (2012년 )
평균수명(세), 73.39 (2008년 )
1인당 명목 GDP($), 5776 (2012년 )
수출규모(억$), 85.36 (2011년 )
수입규모(억$), 174.2 (2011년 )
인구밀도(명/㎢), 197 (2010년 )
GDP(PPP)($), 9645 (201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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